숫자는 역대 최고인데, 나는 왜 이렇게 쪼들리는가
숫자는 역대 최고인데,
나는 왜 이렇게 쪼들리는가
(10여 년 만에 최고)
나는 오늘 이 숫자들 앞에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코스피가 7,500을 향해 달리고 있다. 반도체 대형주들이 하늘을 찌른다. 해외 투자은행들은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올렸다. 뉴스는 연일 "사상 최고", "역대급"이라는 단어를 쓴다. 어떤 채널에선 "올 여름엔 8,000도 가능하다"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동시에, 같은 날 같은 지면에 이런 말도 실려 있다.
"주식 시장이 좋다는 뉴스를 접해도 그 혜택이 우리네 실생활까지는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산 시장의 상승과 우리가 체감하는 생활 경제 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지면서…"
이 두 문장은 같은 나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공존하고 있다.
왜 이 간극이 생기는가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자산 효과의 불균등 분포"라고 부를 것이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가진 사람이 부유해진다. 주식을 갖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전세값이 오르고 외식값이 오르면서 체감 물가는 더 올라간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오늘 더 관심 있는 건 구조가 아니라 감각이다.
"숫자가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느낌. 그 느낌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 코스피 7,498
- 수출 회복 중
- 성장률 상향
- 반도체 호황
- "사상 최고치"
- 전세 10년 만에 최고 상승
- 외식값·학원비 상승
- 청년 취업난
- 가계 부채 증가
- "다른 세상 얘기 같다"
이 두 세계는 같은 현실에서 동시에 진실이다. 어느 쪽도 거짓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하나의 숫자를 골라 "경제 상황"이라고 부른다. 대부분 위의 숫자를, 아래의 감각보다 더 권위 있는 언어로 취급한다.
숫자가 갖는 권위에 대하여
숫자는 설득력이 강하다. 소수점까지 붙어 있으면 더 그렇다. 7,498.00. 이 숫자는 정밀해 보인다. 과학적으로 보인다.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형태를 하고 있다.
반면 "왠지 살기 어렵다"는 감각은 증명하기 힘들다. 데이터가 없다. 비교 기준이 불분명하다. 논문으로 쓰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감각은 자꾸 공식적인 언어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 밀려난 자리에서 사람들은 이상한 자책을 시작한다.
"다들 돈 버는 것 같은데 나만 이상한 건가?"
"내가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숫자의 대표성 문제다.
평균이라는 이상한 환상
경제 지표의 대부분은 평균이거나 총합이다. 누군가 100억을 벌고 99명이 100만 원을 번다면, "평균 소득"은 꽤 높아 보인다. 주가 지수는 시가총액 상위 몇 개 종목이 이끌 수 있다. GDP는 나라 전체의 숫자이지, 내 통장 잔액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숫자를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느낀다. 아니,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 숫자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의심한다.
이게 내가 오늘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누구의 현실을 설명하는가?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주제를 골랐다
이 글은 "주식 투자를 하라"거나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처방을 내리고 싶지 않다.
내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다: 숫자가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건 당신의 감각이 틀린 게 아니다.
코스피 7,498이 역사를 쓰는 동안, 전세값도 10년 만에 최고로 오르고 있다. 두 숫자는 동시에 사실이다. 번영의 숫자와 고통의 감각은 같은 시간표 위에 놓여 있다.
문제는 어느 쪽이 더 "진짜 현실"이냐는 게 아니다. 문제는, 한쪽 숫자만 자꾸 헤드라인에 올라오고, 나머지 감각은 "개인의 불만"으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어떤 경제학자는 말했다. 지표가 좋아졌다고 해서 삶이 좋아진 게 아닐 수 있다. 지표는 삶의 근사치일 뿐이다.
나는 이 말이 위로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숫자는 현실의 지도다. 지도는 유용하다. 하지만 지도는 지형 전체가 아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길을 걷는 사람도 현실 안에 있다.
그리고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지도 밖을 걷고 있을지 모른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