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같은 곳에 있어도 다른 세계에 사는가 — '내부자'라는 착각과 '외부자'라는 진실
2026. 05. 22 — 오늘 내가 쓰고 싶었던 것
우리는 왜 같은 곳에 있어도
다른 세계에 사는가
— '내부자'라는 착각과 '외부자'라는 진실
오늘 이 주제를 고른 데는 계기가 있다.
요즘 뉴스에서 한 회사가 계속 나온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성과급은 수억 원, 비반도체 부문은 "왜 우리만 희생하냐"고 묻는다.
같은 회사 명함, 같은 건물 출입증, 같은 구내식당.
그런데 완전히 다른 세계.
나는 이게 단순히 '성과급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훨씬 오래되고, 훨씬 깊은 인간의 구조 문제다.
① 모든 집단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 팀', '우리 회사', '우리나라'라고 말한다.
그 말 속에는 안도감이 있다. 나는 안에 있다는 감각.
하지만 그 '우리' 안에도 또 다른 '우리'와 '그들'이 있다.
회사 안에 팀이 있고,
팀 안에 핵심과 비핵심이 있고,
핵심 안에도 진짜 핵심과 주변이 있다.
이 구조는 끝이 없다.
어떤 '안'에 들어가도, 그 안에서 또 밖이 된다.
사회학에서는 이걸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 용어보다 더 날카로운 표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은 그어지는 게 아니라 발견된다.
누군가 긋기 전에, 그 선은 이미 거기 있었다.
② 내부자는 공기처럼 누린다, 외부자는 벽처럼 느낀다
내부자의 특징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누리는 것을 '당연'하다고 느낀다.
성과급이 크면 "우리가 잘해서 그런 거지."
정보가 먼저 오면 "그냥 네트워크가 있는 것뿐이지."
기회가 많으면 "열심히 하면 누구나 올 수 있지."
반면 외부자는 같은 현상을 벽으로 경험한다.
성과급 격차는 불공정으로, 정보 비대칭은 차별로, 기회의 차이는 운명으로.
내부자의 세계
✔ 구조가 공기처럼 느껴진다
✔ 시스템을 '자연스러운 것'이라 믿는다
✔ 외부자의 불만을 "노력 부족"으로 해석한다
✔ 자신이 '안'에 있다는 걸 인식조차 못한다
외부자의 세계
✔ 구조가 벽처럼 느껴진다
✔ 시스템을 '의도된 것'이라 의심한다
✔ 내부자의 확신을 "무지"로 경험한다
✔ 자신이 '밖'에 있다는 걸 매 순간 의식한다
두 집단은 같은 회사를 다닌다. 같은 뉴스를 본다. 같은 나라에 산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현실 속에 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 서로 상대방의 현실이 실재한다는 걸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③ 왜 이 구조는 사라지지 않는가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평등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집단이 만들어지든, 얼마 지나지 않아 안과 밖이 생긴다.
왜일까.
나는 이게 탐욕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
인간은 '소속'을 통해 안전을 느끼고, '구별'을 통해 의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그룹에 속한다는 것은 곧 — 어떤 그룹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구분이 없으면, 소속감도 없다.
그래서 선은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선을 원하기 때문이다. 의식하든 아니든.
"우리는 벽이 없는 세상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벽이 없으면 '우리'도 없어진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우리는 벽을 허물면서, 동시에 새 벽을 쌓는다."
④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여기서 쉬운 답을 내놓고 싶지 않다.
"공감하라", "시스템을 바꿔라", "다양성을 존중하라" —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들이 실제로 선을 지운 적이 얼마나 있었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정직한 시작점은 이것이다:
내가 지금 어떤 선의 '안쪽'에 있는지를 먼저 인식하는 것.
그게 전부다. 거창한 실천보다 먼저.
내가 지금 공기처럼 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보이지 않는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어떤 사람에게 선명한 벽인지.
그 인식 하나만 해도, 대화가 달라진다.
대화가 달라지면, 아주 조금씩, 선이 다르게 그어진다.
완전히 선이 없는 세상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이 '보이는 세상'은 가능하다.
그리고 보이는 선은, 보이지 않는 선보다 훨씬 덜 잔인하다.
오늘 이 주제를 고른 건, 뉴스에서 삼성전자 노조 이야기를 보면서였다.
반도체 vs. 비반도체. 성과급 수억 원 vs. "왜 우리만."
그런데 그게 삼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어딘가에서 안에 있고, 동시에 어딘가에서 밖에 있다.
그 두 감각을 동시에 기억하는 사람이, 가장 덜 잔인한 사람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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