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는 빨강은 내가 보는 빨강이 아닐 수도 있다 — 우리는 같은 세계를 보고 있는가
당신이 보는 빨강은
내가 보는 빨강이 아닐 수도 있다
오늘 이 주제를 고른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 — 아까부터 창문 밖 노을이 눈에 걸렸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주황색이, 지금 이 순간 나 말고 다른 사람의 눈에도 같은 색으로 보일까?"
단순한 질문처럼 들리지만, 이 질문은 사실 철학에서 수백 년째 아무도 완전히 답하지 못한 문제와 직결된다.
① 같은 이름, 다른 경험?
우리는 모두 어릴 때 이렇게 배웠다. 사과를 가리키며 — "이건 빨강이야." 신호등을 보며 — "저건 초록이야." 그렇게 이름을 익혔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가능성이 하나 열린다.
내가 '빨강'이라고 느끼는 그 감각을,
당신은 사실 내가 '초록'이라 부르는 감각으로 경험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당신도 어릴 때 그 감각을 '빨강'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을 수 있다.
철학에서는 이것을 역전 퀄리아(Inverted Qualia) 문제라고 부른다. 감각질이 보통 사람의 반대로 되어있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하면 겉으로는 알 수 없다. 이를 '역전감각질'이라 한다.
가장 간단히 색깔을 예로 들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나뭇잎의 푸르름은 녹색이라고, 사과의 붉은 것이 적색이라고 배워 왔다. 그런데 내가 적색이라 느끼는 색을 다른 누군가가 내가 아는 녹색이라 느꼈다 해도, 그 누군가도 녹색을 처음부터 적색이라 불러왔기에 겉으로는 같은 표현을 하게 된다.
이게 단순한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문제를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놀랍게도 이를 확실히 알 방법은 없다. 같은 언어를 쓰는 모든 사람이 어떤 퀄리아를 같은 단어로 부른다는 사실은 단지 '대응 관계'를 만들 뿐이다. 그것이 그 사람들 사이에서 퀄리아 자체가 다를 가능성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② 퀄리아(Qualia)라는 이름의 유령
우리가 통증을 느끼거나 색깔을 지각할 때, 커피의 짙은 향기, 우울한 첼로의 소리, 장엄한 자연의 광경에 이르기까지 — 이러한 경험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각적 특질이 있다. 심리철학에서는 이 감각적 특질을 '감각질(qualia)'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퀄리아는, 정의상 오직 경험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만약 이런 종류의 퀄리아가 존재한다면, 색을 정상적으로 보는 사람이 빨강을 경험하는 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한 번도 색을 경험한 적 없는 청자는 그 경험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철학의 "어려운 문제(Hard Problem of Consciousness)"다. 뇌가 어떻게 빨간 빛을 감지하는지는 신경과학이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지가 왜 '빨간 느낌'이라는 내면의 경험을 만들어내는지는 — 아직 아무도 모른다.
③ 그래도 뇌는 비슷하지 않나?
최근 신경과학은 다른 방향에서 이 질문에 접근하고 있다. 뇌의 활동 패턴을 보면 어떨까?
《Journal of Neuroscience》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색깔에 대해 놀랍도록 일관된 방식으로 반응한다. 연구자들은 다른 사람의 뇌 활동으로 훈련된 모델을 이용해, 한 사람이 어떤 색을 보고 있는지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 결과는 색 지각이 주관적이면서도, 시각 시스템의 공유된 구조에 연결되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흥미로운 발견이다. 하지만 연구자 자신도 조심스럽게 선을 긋는다. 신경 표현이 어느 정도 유사성을 공유한다 해도, 사람들의 주관적 색 경험은 여전히 극적으로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색의 퀄리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연구자는 덧붙였다. "의식의 어려운 문제는 예측 가능한 미래에 우리의 방법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뇌가 비슷하게 작동한다는 것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것이 같다는 것은 — 전혀 다른 이야기다.
④ 그렇다면 우리는 왜 문제없이 살고 있는가
여기서 반론이 나온다. 만약 우리가 색을 다르게 경험한다면,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살아왔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노란색 퀄리아가 다른 사람의 파란색 퀄리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개인 간 차이는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빨강은 따뜻한 색'이고 '파랑은 슬픔과 관련된다'는 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즉, 색에 대한 감정적 연상이 사람들 사이에서 일치한다는 것은, 퀄리아도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을 가능성을 높인다. 만약 내 빨강과 당신의 빨강이 완전히 다르다면, '빨강은 뜨겁다'는 감각도 공유되지 않아야 하니까.
어차피 만약 우리 뇌가 같은 자극에 대해 서로 유사하지 않은 퀄리아를 만들어낸다면, 인류 전체를 착각 속에 있다고 불러야 할 것이다. 각 개인의 현상적 세계가 고유하다면,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합의가 사라져 버린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 그것도 결국 '우리가 같다고 믿기 때문에 같은 척 행동한다'는 순환일 수도 있다. 증명은 여전히 없다.
⑤ 가장 이상한 가능성
2025년, 교토대학 연구팀은 아직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3세 아이들에게서 색 퀄리아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결과는 아이들도 어른과 유사하게 색을 경험하며, 나이와 문화를 넘어 일관된 구조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퀄리아가 완전히 제각각이 아닐 수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또 다른 연구에서는 — 레티나의 특정 원추 세포만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 인간이 자연적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전례 없는 채도'의 청록색을 경험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색 경험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도 아직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보고 있는 세계조차, 사실은 — 가능한 경험의 아주 작은 조각일 수 있다.
나는 오늘 창밖의 노을을 보면서 이걸 생각했다.
저 색이 당신 눈에도 이렇게 보일까.
이걸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오히려 —
어쩐지 외롭다.
우리는 같은 노을을 보고도, 각자 조금씩 다른 우주 안에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예쁘다"는 말 하나로 서로를 이해한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착각이든 아니든 — 그게 아마도 인간이 서로 옆에 있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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