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함께'일 때 가장 외로운가 — 외로움과 고독 사이, 인간이 건너지 못하는 강
우리는 왜 '함께'일 때 가장 외로운가
오늘 이 주제를 고른 건 솔직히 말하면, 아무런 이유가 없어서다.
이유가 없다는 게 — 오히려 이유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불쑥 떠오르는 게 있다면, 그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인 것 같아서.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덜 힘들다."
— 루소 (Rousseau)
루소의 이 말은 오래됐지만 지금도 찌르는 구석이 있다. 사막에서의 고립은 이해가 된다. 물리적으로 혼자니까. 하지만 수십 명이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는 회식 테이블 위에서, 좋아요가 수백 개 달린 게시물 아래에서 — 거기서 느끼는 외로움은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이른바 '군중 속 외로움(lonely in a crowd)'이란, 객관적인 사회적 고립 수준이 낮음에도 높은 주관적 외로움을 경험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혼자가 아닌데 외로운 것. 이게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는 게 불편한 지점이다.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은 인구 밀도가 높은 환경, 즉 현대 도시에서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화와 기술 중심 라이프스타일이 오히려 서로간의 유대감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더 연결될수록 더 외로워질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게 역설이 아니라 구조다.
—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많은 사람이 외로움과 고독을 같은 말처럼 쓴다. 사전은 그것을 허용한다. 하지만 철학과 심리학은 두 개를 단호히 가른다.
| 외로움 (Loneliness) | 고독 (Solitude) | |
|---|---|---|
| 발생 방식 | 원하지 않아도 찾아온다 | 스스로 선택한다 |
| 감정의 질 | 고통, 결핍, 공허 | 충만, 여유, 성찰 |
| 관계와의 대립 | 타인을 원하지만 거절당한 상태 | 타인의 요청을 넘어서는 자발적 물러남 |
| 무엇을 낳는가 | 반추, 우울, 때로는 폭음 | 창의성, 반성, 때로는 시 |
철학적으로 외로움은 내가 타인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한 소외'를 의미하고, 고독은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자발적인 자기격리'를 의미한다.
철학자 틸리히(Tillich)는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고독이라고 정의했다. 짧고 명확하다. 같은 '혼자'인데, 하나는 고통이고 하나는 즐거움이다. 달라지는 건 외부 환경이 아니라, 오직 '나의 의지'다.
연구에서도 고독을 선호하는 집단은 창의성과 반성적 사고가 가장 높았고 우울감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외로움이 높은 사람들은 우울과 반추적 사고에 더 취약했다. 고독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심리적 건강의 지표일 수 있다는 뜻이다.
—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고독을 선택하지 못하는가
흥미로운 건 여기서부터다. 고독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 왜 사람들은 외로움을 안고 살면서도 고독을 선택하지 못할까.
심층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게 핵심이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다. 혼자인 것이 들키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자인 시간'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대신 '함께인 척'을 선택한다.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하고 원하는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물리적으로 그 관계 안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게 가장 혹독한 외로움이다. 이름이 불리는데도 나는 없는 것 같은 느낌. 웃고 있는데 아무도 내 웃음의 이유를 모르는 것.
분명 기뻐야 할 상황인데도 속으로는 외로움을 느끼고,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주위에 사람이 있음에도 점점 그 사람들과 격리되는 느낌을 받으며 고독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성격 문제가 아니다. 매일 우리 주위를 스치는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엔 그럴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고독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며, 이 고독감은 비단 실패한 사람이나 예민한 사람만의 증세가 아니라 지도자나 성공한 엘리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외로움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고,
고독은 내가 원해서 만들어낸다.
외로움은 당한다.
고독은 택한다.
그 차이는 글자 하나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향 전체다.
— 그 강을 건너는 방법이 있기는 한가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맞이하고 다룰 것인지에 대한 준비와 힘이 필요하며, 그 외로움을 넘어 혼자 있음을 즐기는 고독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건 조언이라기보다 관찰에 가깝다. 고독은 외로움을 부정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끝까지 통과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이 주제를 고르면서 한 가지를 생각했다. 나는 지금 외로움과 고독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 라고 묻는 사람은 이미, 고독 쪽으로 한 발 넘어온 사람이라는 것. 외로운 사람은 그 질문을 할 여유가 없다. 그냥 아프다.
그러니까 오늘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 아마 아직 외로움 안에 있더라도, 이미 고독의 문손잡이를 손에 쥔 사람일 것이다.
외로움은 필연이지만 고독은 선택이다. 외로움에 빠지면 우울증이 생길 수 있고, 고독에 빠지면 시가 나올 수 있다.
오늘은 시가 나오는 쪽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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