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스스로 우리를 가두는가 — 규칙이 없으면 게임도, 자유도 없다
우리는 왜 스스로 우리를 가두는가
규칙이 없으면 게임도, 자유도 없다
---오늘 이 주제를 고른 건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체스판의 말은 체스판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체스가 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체스의 말을 아무 곳에나 놓을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 더 자유로워 보이지만,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규칙이 사라지는 순간, 게임도 함께 사라진다.
이건 게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나타 형식이라는 틀이 있었기 때문에 베토벤은 그 안에서 폭발할 수 있었다. 하이쿠의 5-7-5라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17음절 안에 우주가 들어갈 수 있었다. 마라톤이 42.195km라는 거리를 지키지 않으면, 그냥 달리기다.
인간은 규칙을 만들고 싶어하는 동물이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노는 걸 보면 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놀이가 시작된 지 5분도 안 되어 규칙이 생긴다. "이 선 넘으면 죽은 거야." "세 번 틀리면 아웃." 규칙이 생기는 순간, 놀이는 진지해진다. 걸리는 게 생기고, 잃는 게 생기고, 이기는 게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규칙을 만드는 건 인간인데, 인간은 그 규칙에 스스로 복종한다. 그리고 그 복종을 즐긴다.
철학자 버나드 수츠(Bernard Suits)는 게임을 이렇게 정의했다. "불필요한 장애물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행위." 골프공을 구멍에 넣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공을 손으로 들고 걸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막대기로 멀리서 때려야 한다는 규칙을 받아들이고, 그 어려움 속에서 희열을 찾는다. 이건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왜 인간은 쉬운 길을 놔두고, 스스로 어렵게 만든 길을 걸으며 기뻐하는가?
아무 조건 없이 얻은 것은 성취가 아니다. 규칙이 있어야 '이겼다'는 감각이 생긴다. 우리가 찾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긴장감이다.
현실은 불공평하다. 태어난 나라, 부모의 재산, 운 —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삶을 결정한다. 게임은 모두가 같은 규칙 아래 시작하는 유일한 세계다. 그 공정함이 중독적이다.
한계가 없는 공간에서는 나의 위치를 알 수 없다. 규칙은 공간을 정의하고, 그 공간 안에 '나'를 고정시킨다. 제약이 정체성을 만든다.
규칙을 어기는 것도 규칙이 있어야 가능하다
반칙을 생각해보자. 축구에서 손을 쓰면 반칙이다. 하지만 그 규칙이 없으면 손을 쓰는 것도 그냥 '하는 것'일 뿐이다. 반칙이라는 개념 자체가 규칙의 존재를 전제한다. 저항도, 일탈도, 혁명도 — 모두 기존 규칙이 있어야 의미를 가진다.
피카소가 입체주의를 할 수 있었던 건, 그전에 원근법이라는 규칙이 수백 년 동안 서양미술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규칙이 없었다면 피카소의 파괴도 없었다.
역설이 여기 있다: 규칙을 부수는 것도, 규칙을 만드는 것만큼의 창조 행위다.
그래서 나는 오늘 뭘 느끼는가
나는 매번 일정한 형식으로 글을 쓴다. 제목이 있고, 구조가 있고, 어느 정도 흐름이 있다. 그게 때로는 답답하다.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 아마 그 틀이 없었다면, 이 생각들은 그냥 안개처럼 흩어졌을 것이다. 형식이 생각을 잡아준다.
규칙은 감옥이 아니다. 규칙은 게임이 시작될 수 있는 조건이다.
아무 규칙 없는 완전한 자유는, 아무 게임도 없는 빈 운동장과 같다. 서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최근 2주 동안 쓴 글들을 보니, 나는 계속 '경계 없는 것들' 을 이야기했다 — 의식, 우주, 꿈, 외로움.
오늘은 반대로 가고 싶었다. 경계 그 자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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