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은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 색깔은 세계에 있는가, 눈에 있는가, 아니면 말 속에 있는가
파란색은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색깔은 세계에 있는가, 눈에 있는가, 아니면 말 속에 있는가
오늘 이 주제를 고른 이유가 있다. 오후에 흐린 하늘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저게 파랗다는 건, 대체 누가 정한 거지?" 물리학자는 파장이라고 답한다. 철학자는 감각질(qualia)이라고 말한다. 언어학자는 단어가 없으면 보이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셋 다 맞고, 셋 다 불완전하다. 그 간극이 오늘 하루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1. 호메로스의 바다는 왜 포도주 빛이었는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바다를 "포도주 빛 바다(wine-dark sea)"라고 불렀다. 호메로스는 하늘을 "청동빛"이라 했고, 꿀을 "초록"이라 했으며, 양을 "보라색"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27,000행이 넘는 호메로스의 전체 작품 어디에도 "파란색"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처음 체계적으로 파고든 사람은 영국의 총리이자 고전학자였던 윌리엄 글래드스톤이었다. 글래드스톤은 호메로스의 색채 감각이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어딘가 어긋나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초록을 꿀과 나무에, 보라를 철에 사용했으며 바다를 "포도주 빛"으로 묘사했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것을 시적 허용으로 보았지만, 글래드스톤은 그 설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색채 묘사 자체가 전반적으로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현상은 그리스만의 일이 아니었다. 고대 문명에는 파란색을 가리키는 말이 없었으며, 파란색은 그리스어, 중국어, 일본어, 히브리어를 포함한 수많은 언어에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색 이름이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는데, 바로 이집트였다. 이집트인들은 파란색을 가리키는 단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수천 년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청색 안료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집트 블루 안료에 접근할 수 없었던 문명이라면, 파란색에 대해 말할 이유 자체가 없었을지 모른다.
| 순서 | 색 | 이유 (추정) |
| 1 | ⬛ 검정 / ⬜ 흰색 | 밤과 낮을 구분하는 생존의 색 |
| 2 | 🟥 빨강 | 피, 위험, 분노의 신호 |
| 3 | 🟩 초록 / 🟨 노랑 | 익은 것과 익지 않은 것의 구별 |
| 4 (마지막) | 🟦 파랑 | 모든 문화에서 예외 없이 가장 나중 |
언어학자들이 연구한 모든 문화에서 흑과 백이 가장 먼저 이름 붙여진 색이며, 파란색은 "모든 단일 문화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왜 하필 파랑이 마지막일까?
한 가지 설명은 실용성이다. 파란 열매는 없다시피 하고, 파란 동물도 드물다. 하늘과 바다는 파랗지만, 그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 구분하고 골라낼 필요가 없는 배경이었다. 이름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2. 단어가 없으면 색도 보이지 않는가
여기에서 훨씬 불편한 질문이 나온다.
단어가 없다면, 그 색은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인가?
나미비아의 힘바(Himba)족은 파란색을 가리키는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심리학자 줄스 데이비도프가 힘바족을 연구한 결과, 색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으면 그 색을 다른 색과 구별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에게 파란 정사각형 하나와 초록 정사각형 열한 개를 보여주고 다른 것 하나를 찾으라고 하면, 힘바족은 쉽게 찾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은 초록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단어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우리 눈에는 같아 보이는 두 초록을 그들은 즉시 구분한다.
언어가 지각 자체를 바꾼다. 색의 경계선을 뇌 속에 그어주는 것이다.
— 색채 철학의 핵심 논쟁
3. 피고 새우의 눈 — 더 많이 보는 것이 더 잘 보는 것인가
이제 정반대 방향으로 가보자.
갯가재(mantis shrimp)는 동물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각 시스템을 가진 생물 중 하나다. 인간이 세 개의 색 수용체에 의존하는 반면, 갯가재는 손톱보다 작은 눈 안에 최대 16개의 광수용체를 가지고 있다. 자외선부터 적외선에 가까운 영역까지, 우리가 상상도 못할 빛의 영역을 감지한다.
당연히 우리는 생각했다. "저 생물은 우리가 꿈도 꿀 수 없는 색의 세계를 본다."
그런데 2014년에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나왔다. 갯가재는 25~100나노미터 차이가 나는 색만 구별할 수 있는 반면, 인간은 불과 5나노미터 차이의 색도 구별한다. 실제로 색 변별 능력은 인간이 더 뛰어났다.
16개의 수용체를 가지고도 색을 더 못 본다니 —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갯가재의 뇌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인간 같은 거대한 시각 처리 센터가 없다. 그렇다면 그 많은 시각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답은 전문화를 통한 효율성이다. 12~16개의 색 채널을 동시에 비교하는 대신(이는 엄청난 신경 처리 능력을 요구한다), 각 중간대의 행이 별도의 상대 채널로 기능한다. 어떤 특정 수용체가 가장 강하게 반응하는지를 인식함으로써 빠르게 색을 식별한다.
갯가재의 눈은 색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분류하는 기계다. 바코드 리더처럼. 그들에게 색은 예술이 아니라 신호다. 빠른 사냥을 위한 코드표.
색 변별 능력: 인간보다 낮음
색의 기능: 빠른 분류, 사냥 신호
방식: 바코드처럼 즉각 식별
색 변별 능력: 약 100만 가지 색
색의 기능: 감정, 미학, 의미 부여
방식: 채널 간 비율 비교, 정교하게 통합
더 많이 보는 것이 더 잘 보는 것이 아니다. 갯가재는 우리보다 넓은 스펙트럼을 탐지하지만, 우리는 그 좁은 스펙트럼 안에서 훨씬 섬세하게 구분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의미를 붙인다. 그게 차이다.
4. 그렇다면 색은 어디에 있는가
뉴턴은 프리즘 실험을 통해 빛을 파장으로 분해하고, 색을 객관적 실체로 파악했다. 뉴턴은 분광실험을 통해 색채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로 파악한 반면, 괴테는 색을 인식하는 인간의 태도에 의해 달라지는 주관적 실체로 접근했다.
3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둘 다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동시에 둘 다 불완전하다는 것도.
색채 지각은 빛의 강도와 관계없이 다른 주파수로 구성된 빛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능력으로, 눈에 들어오는 빛의 차등 자극으로 시작해 궁극적으로 뇌의 더 높은 인식 기능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과정이다.
색은 파장이다 — 맞다. 그러나 파장 자체에는 색이 없다. 전자기파는 색이 없다. 그것이 특정 눈의 수용체를 자극하고, 뇌가 그것을 처리하고, 언어가 그것에 경계선을 그어줄 때, 비로소 "파랑"이 탄생한다.
가시 스펙트럼의 파장과 인간의 색상 경험 사이에는 복잡한 관계가 있다. 철학자 존 로크는 다른 대안이 가능하다고 인식했으며, "반전 스펙트럼" 사고 실험으로 가상 사례를 설명했다. 내가 "파랗다"고 느끼는 것을, 당신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느끼는가? 우리는 영원히 확인할 수 없다.
색상 경험이 세상의 속성으로부터 명확히 분리될 가능성은 색상이 주관적인 심리적 현상임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당신의 눈은 화면에서 빛을 받고 있다. 그 빛의 파장이 망막의 세 종류 원뿔세포를 다른 비율로 자극하고 있다. 그 신호가 뇌의 시각 피질을 거쳐 처리되고, 당신이 배운 언어가 그것을 "파랗다"거나 "어둡다"거나 "배경색"이라고 분류한다.
그 순간 전체가 색이다.
파장도 색이고, 신경도 색이고, 언어도 색이다.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색은 없다.
호메로스의 바다가 포도주 빛이었던 건, 그가 색맹이어서가 아니다. 그에게는 그 하늘빛을 묶어둘 단어가 없었고, 단어가 없으면 뇌는 그것을 하나의 독립된 현상으로 자르지 못한다. 바다는 그냥 거기 있었다 — 파랗다는 생각 없이.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보는 파란 하늘도,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파랗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눈 앞에 있는데, 우리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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