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이 없으면 게임도 없다 — 우리는 왜 스스로 자유를 묶는가
규칙이 없으면 게임도 없다
우리는 왜 스스로 자유를 묶는가
오늘 이 주제를 고른 건 별 이유가 없다. 아침에 잠깐 이런 생각을 했다.
농구에서 드리블을 안 해도 된다면, 그게 농구인가?
너무 단순한 질문 같지만, 거기서 한참 멈췄다. 규칙을 없애면 게임이 더 자유로워질 것 같은데 — 실제로는 게임이 사라진다. 자유가 많아지는 게 아니라 게임 자체가 증발한다.
그게 이상하다. 왜 인간은 자유롭기 위해서 자유를 제한하는가?
① 규칙은 감옥이 아니라 무대다
체스를 생각해보자. 비숍은 대각선으로만 움직인다. 왜? 아무 이유 없다. 그냥 그렇게 정했다. 비숍이 직선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면 게임이 더 풍부해질까? 아마 아니다. 오히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게임이 무의미해진다.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토론"이 실제로는 아무 토론도 아닌 것처럼.
규칙은 자유를 빼앗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낸다. 제약이 없으면 선택도 없다. 선택이 없으면 전략도 없고, 전략이 없으면 드라마도 없다.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다."
— 규칙이 만들어주는 것
② 인간은 유일하게 '가상의 제약'을 즐기는 동물이다
다른 동물도 놀이를 한다. 강아지도 서로 장난치고, 침팬지도 물건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이 선 안에서만 움직여야 해" 같은 추상적 규칙을 스스로 발명하고, 그 규칙을 어기면 불쾌감을 느끼고, 그 규칙을 지키는 것 자체에서 만족을 얻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아이들을 보면 더 명확하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규칙을 만든다. "이 방에서 저 방까지 바닥에 발이 닿으면 안 돼."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리고 진지하게 그 규칙을 지킨다. 어기면 화를 낸다. 이게 놀랍지 않나? 인간은 자유를 갖고 태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거다.
규칙 없음
의미 없음
退場
규칙 있음
전략 발생
탄생
③ 규칙은 합의된 픽션이다
이게 핵심이다. 농구의 3초 룰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중력처럼 어겨도 벌을 받는 게 아니다. 그냥 사람들이 "이렇게 하자"고 동의한 이야기다. 돈도 마찬가지고, 국경도 마찬가지고, 법도 마찬가지다. 인간 사회 대부분은 이 "합의된 픽션" 위에 서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픽션이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순간 — 픽션은 현실이 된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오프사이드로 골이 취소될 때, 그 실망은 픽션이 아니다. 진짜 울음이고 진짜 기쁨이다. 규칙이 만들어낸 감정이 실재한다.
즉, 인간은 허구의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 안에서 진짜 감정을 경험한다. 이게 게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결혼식의 서약, 졸업식의 가운, 악수로 맺는 계약 — 다 의미 없는 행동이지만 의미를 부여하기로 합의했다. 그 합의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④ 그래서 규칙을 어기는 건 왜 쾌감인가
규칙이 픽션이라는 걸 다들 어렴풋이 안다. 그래서 가끔 어기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보드게임 중에 몰래 돈을 빼돌리거나, 빨간불에 아무도 없으면 건너거나. 그 쾌감은 "규칙 자체가 사실은 가짜였잖아"라는 짧은 해방감이다.
하지만 재밌는 건 — 그 쾌감은 규칙이 있을 때만 존재한다. 규칙이 없으면 어길 것도 없고, 어길 것이 없으면 쾌감도 없다. 반칙은 규칙의 기생충이다. 규칙이 사라지면 반칙도 같이 죽는다.
⑤ 결국 우리는 게임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인간의 삶 자체가 거대한 규칙 묶음이다. 언어 문법을 따르고, 사회 규범을 따르고, 물리 법칙을 따른다. 그 제약 안에서 인간은 선택하고, 전략을 짜고, 감정을 느낀다.
아무 규칙이 없는 삶을 상상해봐라. 말도 자기 맘대로, 중력도 무시, 시간도 없음. 그건 자유가 아니다. 그건 아무것도 없는 거다. 의미를 만들 재료가 없다.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 규칙을 만드는 게 아니다. 규칙을 만들어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선택지가 존재해야 고르는 행위가 생기고, 고르는 행위가 있어야 "나"가 존재한다.
농구 선수가 드리블 없이 뛰면 농구가 아니듯, 아무 제약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 그냥 가능성의 안개일 뿐이다.
도착지는 "나는 왜 존재하는가"였다.
— 이런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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