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왜 항상 '나'를 가운데 두는가 — 세상을 그린다는 것은 세상을 주장하는 일이다
지도는 왜 항상 '나'를 가운데 두는가
오늘 이 주제를 고른 건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잠깐 머릿속으로 세계지도를 떠올려 봤는데,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한반도를 중간쯤에 놓고 있었다. 그게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지도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그린 지도를 보고 있구나.
그래서 쓰기로 했다. 지도에 대해서.
🗺 지도는 사실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인류가 최초로 지도를 만든 건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바빌로니아의 지도는 단순히 지리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을 나타내는 일종의 모식도였다. 지도는 처음부터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가가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생겼어야 한다고 우리가 믿는가를 담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인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바빌로니아를 지도 가운데에 위치시켜 그들의 수도를 세상의 중심으로 바라보았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보면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만 나와 있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무지가 아니다. 이것은 자기중심성이다. 그리고 자기중심성은 인간이 지도를 그릴 때 피할 수 없는 출발점이다.
📐 수학적으로도, 사실은 불가능하다
지도가 왜곡을 담는 건 실수가 아니다. 지도 투영법은 모두 지구를 평면에 매핑할 때 곡면이 왜곡되며, 거리나 면적 혹은 각도를 지키는 방법은 있지만 이 세 가지를 모두 지키는 것은 하나도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등각이면서 동시에 등적인 지도는 존재할 수 없다.
즉, 지도를 그리는 순간 당신은 반드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모양을 살릴 것인가, 면적을 살릴 것인가, 거리를 살릴 것인가. 그 선택 안에 이미 가치 판단이 들어간다. 지도는 중립적일 수 없다. 선택이 없는 지도란 없기 때문이다.
| 지역 | 실제 면적 | 메르카토르 지도에서의 인상 |
|---|---|---|
| 아프리카 | 3,037만 km² | 실제보다 훨씬 작게 보임 |
| 남아메리카 | 유럽의 약 2배 | 유럽과 비슷하게 보임 |
| 그린란드 | 216만 km² | 아프리카만큼 커 보임 |
| 알래스카 | 브라질의 1/5 | 브라질과 비슷해 보임 |
🧭 왜곡은 항해를 위한 것이었다 — 그런데 교실에 걸렸다
메르카토르 도법이 처음 만들어진 이유는 정치적 음모가 아니었다. 항해자에게 이것은 혁명이었다. 자를 대고 그은 선을 따라 나침반 하나만 보고 대양을 건널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문제는 다음이었다. 이 항해 도구가 20세기 내내 교실과 신문과 뉴스 배경에 걸렸다는 데 있다. 배를 몰기 위해 만든 그림이 세계의 표준적인 인상이 되어버렸다. 지도학자 마크 몬모니어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이런 시각적 습관이 세계의 무게 배분에 대한 감각을 조용히 왜곡한다고 지적해 왔다.
그리고 2017년 보스턴에서 일이 벌어진다. 보스턴 공립학교 교실에 피터스 도법으로 그린 세계지도가 걸렸고,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린 기존의 세계지도와 다른 점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학생들은 새로 알게 된 엄청난 사실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학생들의 세계관도 순식간에 크게 바뀌었다.
지도 한 장을 바꿨을 뿐인데. 세계관이 바뀌었다. 지도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는 증거는 이보다 선명할 수 없다.
💡 그래서 나는 오늘 이걸 생각했다
지도의 이야기를 쭉 따라가다 보면, 결국 질문은 이쪽으로 온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 — 상식, 기준, 중심 — 은 언제부터 그게 당연했는가? 그리고 누가 그렇게 정했는가?
지도는 비유다. 지도가 물리적인 세계를 그리듯, 우리는 매일 머릿속에 지도를 그린다. 내가 중심이고, 친숙한 것들이 크게 보이고, 낯선 것들은 구석에 밀린다. 그 지도가 나를 만들고, 나는 그 지도로 세상을 본다.
더 무서운 건, 내 지도의 왜곡을 내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메르카토르 도법이 자신이 왜곡인지 몰랐듯이.
피터스 도법을 처음 본 보스턴 학생들이 입을 다물지 못한 건 아프리카가 갑자기 커져서가 아니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잘못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것이리라. 그리고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 때문에.
그럼 내가 지금 당연하게 보고 있는 다른 것들도… 혹시?
지도의 진짜 가치는 정확성에 있지 않다. 어차피 완전히 정확한 지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도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가운데 두기로 선택했는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에 있다.
당신의 지도에서 가운데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구석에 작게 그려진 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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