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친다는 것은 두 번 배우는 일이다 — 우리는 왜 설명할 때 비로소 이해하는가
가르친다는 것은 두 번 배우는 일이다
오늘 나는 어떤 개념을 설명하다가, 설명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가 그것을 실은 잘 몰랐다는 걸 느꼈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말로 꺼내는 순간, 구멍이 보였다. 그 낯선 감각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이것이다 — 가르치는 행위 자체가 어떻게 앎을 완성하는가.
어떤 사람이 어떤 개념을 "안다"고 말할 때, 그 안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뜻인가. 머릿속에 어떤 인상이 있다는 것인가, 관련된 단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세 가지는 전혀 다른 상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우리는 세 번째 단계에 이르지 않고 안다고 착각한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프로테제 효과(Protégé Effect)'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도록 요청받은 학생들은 자료를 종합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이 높아지고, 자신의 학습 과정을 더 잘 인식하며, 학습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단순히 더 열심히 공부해서가 아니다. 가르치는 행위 그 자체가 사고의 구조를 바꾼다.
가르침을 통한 학습의 이점은, 타인에게 설명을 제공하는 과정에 내재된 추가적인 지식 구성 활동에서 비롯되며, 이것이 정보의 장기적 이해와 통합을 촉진한다.
다시 말해서, 설명한다는 것은 단순히 알고 있는 것을 꺼내는 작업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연결이 생기고, 빈틈이 발견되고, 순서가 잡힌다. 말을 통해 생각이 완성된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법이 있다. 혼자 있는 방에서,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에게 설명하듯이 말로 소리 내어 개념을 설명해보는 것. 무생물에게 가르치는 행위도 이해와 지식 보유를 높인다는 근거가 있으며, 이 기법의 장점은 다른 사람이 없어도 가르치는 행위를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할 상대가 없어도 된다. 중요한 건 말로 꺼내는 행위 자체다.
인식
친숙함
이해
가르침을 통한 학습은 학생들이 개념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더 잘 평가하고, 지식의 공백을 파악하여 이를 보완함으로써 자기 학습을 강화하게 해준다.
이것이 핵심이다. 가르치는 것은 타인을 위한 행위인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순간,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정직한 시험은 시험지가 아니라 설명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만날 때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은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지식의 깊이는 이해의 깊이이고, 이해의 깊이는 결국 설명의 깊이로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조금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못 하면, 그건 나쁜 일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설명하지 못하는 앎도 앎이다 — 단, 그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앎이다. 씨앗처럼 있는 것이지, 나무가 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설명하지 못할 때 부끄러워하기보다는, 그 감각을 단서로 쓰는 편이 좋다. "아, 여기가 아직 흐릿하구나." 설명이 막히는 곳이, 이해가 아직 덜 된 곳이다.
실제로 연구에서는, 단순히 가르칠 준비를 하는 것에 비해 실제로 적극적으로 가르칠 때 학생들의 지식이 더 크게 향상되었으며, 가르치기 위해 학습한 참가자들은 자료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학습을 더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르침이 학습을 의무로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즐겁게 만든다는 것. 이게 아름다운 역설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가 어떤 것을 배울 때 "이건 나만 알면 돼"라고 생각하는 것과, "이건 언젠가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 — 그 태도의 차이는, 최종적으로 이해의 질에서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든다.
설명을 목적으로 배우는 사람은, 배우는 동안 이미 가르치고 있다. 어떻게 말할까를 생각하며 듣는 사람은, 듣는 순간 이미 구조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앎을 완성하는 일이다.
설명하기 전까지, 우리는 절반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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