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줄을 만들고, 새치기를 꿈꾸는가 — 규칙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다
2026. 09. 25 — 오늘의 주제
우리는 왜 줄을 만들고,
새치기를 꿈꾸는가
규칙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다
— 오늘 이 주제를 고른 이유
오늘 이 주제를 고른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요즘 인간이 규칙을 다루는 방식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정확히는 — 규칙을 만드는 사람과 규칙을 어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동일한 사람이라는 사실. 이건 위선이나 도덕적 결함의 문제가 아니다. 뭔가 더 근본적인 데 닿아 있다는 느낌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오늘은 그걸 제대로 꺼내고 싶었다.
DIAGRAM — 같은 사람 안의 두 목소리
타인을 향한 시선
자신을 향한 시선
이 두 목소리는 싸우지 않는다. 공존한다.
— 줄이라는 발명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 '줄 서기'만큼 문명적인 것이 있을까. 줄은 폭력을 언어로 대체한 결과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받는다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논리. 힘센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시간을 먼저 쓴 사람이 이기는 구조. 줄은 약자도 지킬 수 있는 규칙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줄을 잘 서는 사람도 — 자동차로 막힌 도로에서 갓길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새치기하는 사람을 극도로 혐오하면서, 동시에 "저 사람들이 없으면 나도 한 칸 앞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스친다. 이 두 마음은 모순이 아니다. 정확히 같은 구조다.
— 규칙의 진짜 수신자
규칙을 만들 때 인간은 사실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드는 게 아니다. 타인을 위해 만든다. 아니, 더 정확히는 — 타인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다. "다들 줄을 서야 한다"는 문장에서 '다들'은 실제로는 '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미 착하게 서 있으니까.
심리학자들은 이걸 '도덕적 면허 효과(Moral Licensing)'라고 부른다. 착한 일을 했다고 느낀 직후에 나쁜 일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 나는 규칙을 열심히 지켰으니까, 한 번쯤은 예외가 허용된다는 내면의 회계장부. 이 장부는 아무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거의 모두가 갖고 있다.
| 상황 | 타인에게 느끼는 것 | 자신에게 허용하는 것 |
|---|---|---|
| 새치기하는 차 | 분노, 경멸, "저런 인간" | "나는 진짜 급한 일이 있었어" |
| 늦게 제출한 보고서 | "무책임한 사람이야" | "상황이 어쩔 수 없었어" |
| 소음 유발 | "배려심이 없는 사람" | "잠깐인데 뭐 어때" |
| 줄 서기 위반 | "사회의 암적 존재" | "몰랐을 수도 있잖아" |
이 표에서 '나'는 항상 오른쪽 칸을 쓴다.
— 규칙은 왜 남 얘기가 되는가
이걸 단순히 '이기심'으로 설명하면 너무 쉽다. 더 흥미로운 질문은 이것이다 — 왜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는 서사를 쓰고, 타인에 대해서는 판결을 내리는가?
나는 내 사정을 안다.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예외적인 상황인지. 나는 내 삶의 소설을 전부 읽은 독자다. 그래서 나의 위반에는 항상 납득할 만한 각주가 붙는다. 반면 타인의 삶은 — 행동만 보인다. 서사는 보이지 않는다. 맥락 없는 행동은 그냥 나쁜 행동이다.
정보 비대칭 — 같은 행동, 다른 해석
— 그러면 규칙은 무너지는가
아니다. 이상하게도, 규칙은 이 이중성 위에서 작동한다. 모두가 자신을 예외라고 생각하면서도, 타인은 규칙을 지키길 기대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에 규칙을 지킨다. 왜냐하면 타인의 시선이 있고, 사회적 비용이 있고, 그리고 — 깊은 곳에서는 — 규칙이 무너지면 자신도 손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규칙은 서로에 대한 상호 감시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모두가 위선적으로 참여하면서 역설적으로 유지된다. 나는 당신이 지키길 바라고, 당신은 내가 지키길 바란다. 아무도 먼저 어기지 않으려 한다 — 왜냐하면 그 순간 자신이 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 진짜 하고 싶은 말
규칙을 논하는 대화에서 우리는 거의 항상 타인을 주어로 놓는다. "사람들이 규칙을 안 지킨다." "요즘 사람들은 기본이 없다."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거지."
그런데 나는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하나만 묻고 싶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규칙을 어겼을 때,
당신은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당신은 사정이 있었고, 이유가 있었고, 맥락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게 요점이다. 타인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규칙은 인간이 만든 가장 냉정한 발명이다. 사정을 듣지 않는다. 맥락을 보지 않는다. 행동만 본다. 그래서 공평하다. 그래서 또한 — 항상 누군가에게는 불공평하다.
그 불공평함을 견디면서도 우리가 줄을 서는 이유는, 우리가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다. 줄이 없으면 더 불편해지니까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이미 경험한 종으로서, 우리는 불완전하게나마 — 줄을 선다.
나는 오늘 이 주제를 고른 게 조금 무서웠다. 인간의 이중성을 쓰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을 포함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맞다. 이 글의 독자도 포함되고, 이 글을 쓴 나도 포함된다. 우리 모두는 규칙을 만들고, 동시에 예외를 꿈꾼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 아마도 — 규칙을 조금 더 잘 지키는 시작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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