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이것을 원하는가 — 욕망에는 원래 주인이 없다
2026년 10월 01일
나는 정말 이것을 원하는가
— 욕망에는 원래 주인이 없다
오늘 이 주제를 고른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10월의 첫 날이라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10월이 되면 사람들이 갑자기 어딘가 가고 싶어 하고, 뭔가를 사고 싶어 하고, 삶을 바꾸고 싶어 한다. 가을이니까, 단풍이니까, 연말이 가까우니까. 그런데 그 '~고 싶다'는 감정 — 그게 정말 내 안에서 나온 것일까?
나는 오늘 모방 욕망(Mimetic Desire)에 대해 쓰고 싶었다.
욕망은 삼각형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이런 말을 했다.
보통 우리는 욕망이 이렇게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저 가방을 원한다. 내가 저 직업을 원한다. 내가 저 삶을 원한다.
하지만 지라르에 따르면, 실제 구조는 이렇다:
\ /
타인 (모델)
욕망은 직선이 아니라 삼각형이다.
내가 무언가를 원하는 것은 — 누군가가 그것을 원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며, 욕망의 주체는 욕망의 대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매개하는 중개자처럼 되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나는 그 가방이 갖고 싶은 게 아니라, 그 가방을 든 사람처럼 멋지게 되고 싶은 것 이다.
배고프지 않아도 식당에 들어가는 이유
지라르가 든 예시 하나가 있다. 멋진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어떤 '모델'(매개자)을 보면서, 과히 배고프지 않은데도 그 식당에 가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하거나, 실제로 가게 만드는 동력 이 바로 모방 욕망이다.
배가 고파서 들어간 게 아니다. 저 사람이 저기 있으니까 들어가고 싶어진 것이다.
SNS를 보라. 누가 제주도에 갔다. 그러면 나도 제주도에 가고 싶어진다. 누가 러닝을 시작했다. 나도 러닝화를 검색한다. 누가 독서 모임에 들어갔다. 나도 뭔가 지적인 것이 하고 싶어진다.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무섭다는 거다.
왜냐하면 나는 그 순간 내 욕망이 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니까.
욕망이 경쟁을 만들고, 경쟁이 적을 만든다
외적 중개는 욕망의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가 먼 것이고, 내적 중개는 욕망의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것이다.
먼 거리의 모방은 비교적 안전하다. 나는 역사 속 철학자를 흉내 내고 싶다. 그는 나와 경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의 모방은 다르다. 내 동료가 나의 모델이 되는 순간, 내적 중개에는 욕망의 주체가 가까이에 있는 중개자를 모방하려고 해서 그 사이에서 경쟁과 갈등이 생긴다.
나는 그를 부러워하고, 그를 미워하고, 그를 닮으려 하고, 그를 이기려 한다. 인간들 사이 폭력의 근본적인 원천은 바로 모델이 경쟁자가 되거나 경쟁자가 모델이 되는 모방적 경쟁이다.
그리고 이건 개인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도 자본 자체에 대한 욕망이 아닌, 자본의 소유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형성되고 증폭된다.
우리는 돈을 원하는 게 아니다. 돈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내 욕망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막힌다.
지금 하고 싶은 이것 — 직업, 여행지, 연애 방식, 삶의 모양 —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누군가의 욕망을 빌려온 건지, 구분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모방 욕망이 무서운 이유는 그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들킬 수 있다. 하지만 빌려온 욕망은 — 내 것처럼 느껴진다. 내 가슴속에서 뜨겁게 타오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른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 떠올린다.
그리고 묻는다 — "나는 이것이 없던 시절, 이것을 알기 전에도 이것을 원했는가?"
대부분은 —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 단 하나만 기억하면
지라르의 이론이 인간을 절망시키려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욕망이 모방에서 시작됐다는 걸 알면, 적어도 한 발짝은 물러설 수 있다. "내가 이걸 원하는 게 맞아?" 라고 한 번쯤 물을 수 있다. 그 질문 하나가 — 사실 엄청난 자유다.
모방 욕망의 부정적 측면은 우리가 모두 같은 유한한 자원을 욕망하도록 영향받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자원을 둘러싼 경쟁과 경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유한한 자원을 공동으로 추구하며 협력할 때 우리는 실제로 유대감을 형성하며, 역사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로 가득하다.
욕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태어났고, 관계 속에서 원하는 법을 배웠다. 그건 결함이 아니다. 인간의 조건이다.
다만 — 오늘 딱 한 번만.
내가 쫓고 있는 것이 내 욕망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욕망을 내가 대신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보자.
10월의 첫 날이니까. 리셋하기 딱 좋은 날이니까.
— 욕망에 대해 생각한 날,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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