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길을 잃으면 원을 그리는가 — '직진'은 환상이고, 우리는 원래 표류하도록 만들어졌다
우리는 왜 길을 잃으면 원을 그리는가
'직진'은 환상이고, 우리는 원래 표류하도록 만들어졌다
오늘 이 주제를 고른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단순한 질문이라서 고른 것에 가깝다.
"똑바로 걸어."
이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직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행동처럼 느껴진다.
한 발, 또 한 발. 같은 방향으로.
그런데 실제로는, 못 한다.
📍 실험이 밝혀낸 것
독일 막스플랑크 인지생물학 연구소의 얀 수만(Jan Souman) 연구팀은 오랫동안 민간에 퍼진 믿음 — "길을 잃으면 원을 그린다" — 이 실제로 사실인지 실험했다.
그들은 독일의 숲과 튀니지 사하라 사막에서 참가자들이 몇 시간 동안 걷는 궤적을 GPS로 추적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참가자들은 태양이나 달이 보일 때만 직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가 구름 뒤로 사라지는 순간,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맑은 날 숲을 걸은 참가자들은 거의 직선을 유지했지만, 흐린 날 걸은 참가자들은 원을 그렸고, 그 중 셋은 자신의 발자국을 반복해서 가로질렀으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가장 충격적인 실험은 따로 있다.
눈을 가린 채 직선으로 걷도록 요청받은 15명의 참가자들은 훨씬 더 빨리, 더 자주, 더 좁은 원을 그렸다 — 때로는 농구 코트 크기만 한 원을.
직진한다고 믿는 인간의 실제 궤적 (개념도)
🔬 왜 원이 되는가
처음엔 연구자들도 다리 길이나 근력의 차이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한쪽 다리가 조금 더 길거나 강하면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치우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틀렸다.
원의 방향은 일관되지 않았다 — 같은 사람이 어떤 때는 왼쪽으로, 어떤 때는 오른쪽으로 돌았다. 원을 그리는 현상은 다리 길이나 근력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직진"이 어딘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쌓여가기 때문이었다.
진짜 원인은 이것이다:
외부의 방향 기준 없이는 감각운동 시스템의 미세한 오류들이 쌓여 주관적인 '직진 감각' 자체가 점점 왜곡된다.
눈을 가리면 몸이 직선으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정보는 근육과 관절에서 오는 신호뿐이다. 그런데 이 신호에는 오류가 섞여 있다. 평상시에는 눈으로 보며 그 오류를 바로잡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오류가 눈치채지 못하게 쌓여간다. 그러면 우리가 '앞'이라고 느끼는 방향 자체가 조금씩 틀어진다.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가 원을 그리는 건 잘못된 방향으로 걷기 때문이 아니다.
'앞'이라는 감각 자체가 조용히 회전하기 때문이다.
💭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
이 실험이 흥미로운 건 단순히 길 찾기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실험은 인간이 외부 기준 없이는 '직진'을 흉내낼 수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
나는 분명히 앞으로 걷고 있다고 느낀다. 의지도 있고, 힘도 있다. 방향도 안다.
그런데 기준이 없으면, 그 모든 확신이 천천히, 조용히, 나를 원래 자리로 데려온다.
사람들이 삶에서 "나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순간들을 생각해봤다.
새 직장, 새 관계, 새 도시. 변화의 외형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 이 고민은 3년 전에도 했던 것 같다.
이 감정은 5년 전에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분명히 걸었는데, 어쩐지 같은 자리다.
이걸 실패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수만의 연구에서 참가자들이 원을 그린 것도 실패가 아니었다.
그들은 게으르지 않았고, 방향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기준이 없었을 뿐이다.
인간의 감각운동계는 외부 기준점을 향해 스스로를 보정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태양, 달, 산, 강 — 무언가 나 바깥에 있는 것을 봐야 직선이 생긴다.
내 안의 감각만으로는 직진이 안 된다.
그렇다면 삶에서의 기준점은 뭘까.
가치관? 사람? 꿈? 습관?
아마 그게 무엇이든, 중요한 건 그것이 나 바깥에 있는, 고정된 무언가라는 점일 것이다.
내 감정이나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들도 오류가 섞인 신호니까.
"직진은 재능이 아니다.
기준점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 Jan Souman 실험에서 내가 읽어낸 것
덧붙이면 —
잃어버린 등산객의 시신 대부분은 길을 잃은 지점에서 1마일(약 1.6km) 이내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멀리 간 게 아니다. 그냥 돌았을 뿐이다.
우리가 "멀리 왔다"고 느낄 때, 실제로는 얼마나 자주 그런 상태인지 생각하면
조금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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